왜 우리는 그토록 두렵고 괴로운가
나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지내는 것을 바라왔다.
그것이 내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우테코는 내게 그런 곳으로 비쳤고, 실제로 겪어본 우테코는 정말 그런 곳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뜻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우테코에서도 나의 마음이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다.
우테코의 ’좋은 환경’은 내게 막연한 불안감과 내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만들어냈고,
우테코의 ’좋은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나의 강점을 평범함으로 바꾸어버렸다.
내게 주어진 환경과 별개로 불안과 우울, 그리고 조바심은 어떤 이유로든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에 대해 크루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나의 심정을 고백했는데, 이후에 알게 된 것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변 크루들도 나와 같은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경험은 꽤나 놀라웠는데, 이유가 다른 저마다의 고민들이 내게 너무나 의외였기 때문이다.
높은 실력으로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던 크루는 자신이 쌓아온 것을 남들이 너무나 쉽게 따라오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고,
모두에게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던 크루는 다른 크루들이 자신을 미워할까 걱정하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장점으로부터 그들의 고민이 시작된다는 것이 너무 기이하게 느껴져 이에 대해 깊은 고민들을 했다.
왜 우리는 남이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를 그토록 두려워하고, 나의 성장을 의심하며, 그 상황 자체에 조바심을 느끼는 것일까?
왜 나는 남에 대해서 그토록 관대하고 낙관적인 와중에 나 스스로에게만 가혹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것을 인간의 본능에서 찾고자 했다.
인간이 그저 본능에 충실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나의 모순을 용서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객관, 직관, 명백한 사실과 같은 것들을 좋아하고, 그러한 사고를 통해 얻어지는 생각만을 믿고 따르려 한다.
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생각보다 더 깊숙한 무의식의 영역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감정적인 면모가 먼저 작용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음에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남의 의견이 잘못됨을 알더라도 그것을 비판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인간은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평가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고 여기는 반면, 스스로에게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정말 어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주변 크루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존경한다.
모든 크루들이 자신만의 강점과 매력을 가지고 있고, 그 가능성을 믿고 진심으로 크루들을 응원한다.
다른 크루들도 나의 그런 점들을 알아보고 나를 응원해준다.
모두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상황에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오는 자괴감은 객관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저 나의 본능의 부산물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에 매몰될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위와 같은 생각으로 내 근심이 사라질 리 없다.
하지만, 나의 감정이 명백한 사실을 기반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본능이 피워내는 막연한 연막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우울이 나를 잠식하는 것을 막는 큰 힘이 되어줌을 느낀다.
내가 남을 수용할 수 있는 만큼 나를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