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모든 고민들은 인간관계로부터 비롯한다.
이 문장을 처음 볼 때 막연한 거부감이 들었다.
내 고민과 수많은 질문들이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종속되는 존재들이라는 뜻으로 다가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는 저자(아들러 심리학)의 주장을 조금씩 납득할 수 있었다.
복잡한 세계로부터 발생한다고 생각했던 많은 고민과 생각들은 실제로 그러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흔들리는 나의 주관으로 인해 세계를 복잡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어 형성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제를 구분하는 기준
최종 결과는 누구의 것인가?
복잡한 인간관계를 정리할 단 하나의 질문은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이다.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최종적으로 짊어지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따져 그 행위가 누구의 영역인지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의 영역은 내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고 결정하는 것이며,
타인의 영역은 나의 행동을 보고 칭찬을 할지, 비난을 할지, 혹은 실망을 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의 고민들은 타인의 영역을 나의 영역으로 들여와 나의 선택을 휘저어놓도록 방치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내 행동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할지는 상대방이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이기에 타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지 내 행위가 상대방의 결정에 영향을 받거나, 그것을 예상하여 다른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나의 선택으로 상대방의 행위를 조종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인간관계를 방치하라는 뜻인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타인에게 무관심해져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리고, 내 바람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까지가 나의 책임이며, 이후의 선택은 온전히 상대방의 몫임을 인정하고,
설령 내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은 상대방의 선택이라는 것임을 알고 새로운 행위를 상대방에게 요구하거나, 나의 선택을 자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는 이유는 ‘인정받고 싶어서’ 이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종속된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타인에게 미움받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이 나를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제일 뿐이며, 나는 오로지 내가 믿는 최선의 길을 걸을 때 비로소 타인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읽으면서 깨달은 것들은 정말 많았지만, 자칫 어렵고 모호한 말이 되는 것 같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여린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은 내가 준 만큼 받지 못 했다고 판단하고, 내 행동으로 인한 상대의 평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책에서 말하는 것 처럼 나와 타인의 영역을 구분하여 오롯이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짐한다면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