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피드백을 주는 사람?

피드백
-> `어떤 행동이나 결과에 대해 의견, 평가, 반응을 전달하여 개선하거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돕는 상호작용 과정`

피드백이라는 것은 참 어렵다.

피드백의 정의에서 개선하거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이라는 말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개인마다다르게 적용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습관, 행위, 생각 등에 대해 그것이 형편 없다고 솔직하게 지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상대방은 그것을 공격이 아니라 온전히 관찰로서 받아들일 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위처럼 이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본인의 잘못보다 누군가가 자신을 평가하고 적대적으로 대했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우선시 된다면?

피드백으로서 의미가 없을 뿐더러 관계까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검프가 추천한 인간 관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Criticism is futile because it puts a person on the defensive and usually makes him strive to justify himself.

비판은 대개 소용이 없다.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자신을 정당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피드백을 받았을 때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적인 면모가 먼저 발휘되어 피드백의 의미가 쉽게 왜곡된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고려하면서까지 나의 솔직한 마음을 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보통의 상황에서 나의 진실된 생각보다, 상대방이 지금 가장 듣고 싶어하는 달콤한 말이 뭘까 고민하여 말해준다.

하지만, 우테코에서 여러 소프트 스킬 수업들을 듣고 책을 읽으며 결코 그것이 서로를 진정으로 성장하게 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검프의 추천으로 읽은 인간관계론 독후감에는 이렇게 적었다.

개인의 옷에 튄 국물 자국은 백만 명의 사상자를 낸 기근보다 신경 쓰이는 것이며,

인간은 본래 자신의 실수에 대해 지적받았을 때, 수용하기보다 자신의 실수를 지적받았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자아비판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매우 관대하다는 그런 말들이 흥미롭고 좋았다.

다만, 내가 우테코에서 느꼈던 것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반대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 다른 방향으로 발상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단지 좋은 인간관계를 넘어 서로의 성장을 바라는 관계라면, 서로 대등함을 인정하고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지적하며

그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서로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고, 개인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이 옳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꿀 발린 말은 관계를 가깝게 만들고, 상대방의 일시적인 상황을 해소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롭지만, 내가 느끼는 상대방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긍정적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상대방과 함께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비수가 될 수 있는 말들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상황에,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어야 할지 저울질하는 것이 가장 어렵게 느껴졌다.

우테코에서는 여러 도전을 했다.

그저 상대방이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달콤한 말이 뭘까 고민하여 좋은 말을 건네기도 했고, 상대방이 나를 미워할 수 있다는 것까지 감안하며 내 속마음을 솔직히 전한 적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 내게 좋은 피드백을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은 내게 부정적인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았을 것이기에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느끼기에 아직까지 나의 저울질은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주변 사람에게 더 많은 성장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전체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