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6
1. 많은 것을 숨기는 세대
책에서 2030 세대의 절반 이상이 분노, 절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숨겨야 하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젊은 세대들은 독립성이 강하여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최근 MZ세대에서 감정을 대신해주는 컨텐츠가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 내용이 묘하게 불쾌했다.
어째서 감정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신 분노를 표출해주는 컨텐츠를 즐겨 소비할까?
왜 젊은 세대들은 길을 잃었다고 느끼며, 그런 사람들을 MZ세대로 묶어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그토록 많은걸까?
마치 영포티라는 단어가 이슈가 되었을 때 내가 느꼈던 불쾌감과 비슷했다.
기성세대는 조직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MZ세대를 비난하고, MZ세대는 그런 기성세대를 조롱하는 말들을 내뱉는다.
이런 세대론과 혐오는 급격한 산업화와 성장을 겪은 나라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이 너무도 분하고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리 방황하는 것일까.
특정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결코 나이와 같은 인간의 시기적인 특성이 아니라 교육과 사회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지배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본능마저도 억누르는 것이 교육이라는 점에서 우리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과 당장 내던져진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의 부조화로 혼란을 겪는 것 같다.
과거의 한국은 앞서가는 국가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길을 빠르게 따라가는 것이 과제였다.
부모 세대에서는 창의성보다는 효율성이, 호기심보다는 실행이 중요했으며, 그것을 빨리 해내는 것이 당시의 인재상이었다.
노력은 곧 보상이었고, 노력은 곧 성공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은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고 이제껏 좇던 정답지는 사라졌다.
높은 성장률은 더 이상 없고,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돌아온다고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문제를 푸는 법만 배워왔고, 남들을 밟으며 경쟁하며 완벽을 강요받던 세대가 창의적인 문제를 창조하는 사람들만이 각광받고 AI로부터 일자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실존까지도 위협받는 이 시대에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은 그토록 피하고 싶던 패배자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울 리 만무하다.
우리 개인에게 주입되듯 형성된 성공한 인간의 모습과 기준들을 투영하여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나도 쉽게 비난하고, 시대를 타고난 다른 세대를 묶어 욕한다.
그것이 가장 편리한 공격 수단이며 합리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적 배경으로부터 오는 이런 갈등들은 해결되기 너무나 어렵다.
결국 각 세대의 시대적 한계와 아픔에 대해 공감하며 이해하는 것이 답임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나아가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문득 차오르는 공허감과 분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2. 인간다움이란
이제껏 인류는 ’인간다움’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더 나은 효율, 사고, 기억, 연산을 원했고, 공학의 발전이 그것을 이뤄주었다.
인간은 너무나 비효율적으로 진화한 생물이기에, 기술로서 그것을 극복하려 했다.
그런 극복이야말로 완벽으로 향하는 길이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생각하고 창조한다는 인간의 본질은 기술이 대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AI는 어떤가?
소름끼치도록 인간의 영역으로 깊이 들어와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완벽에 가까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해 묻게 되었다.
과연, AI가 초지능을 가지고 인류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훗날, 인류는 지금보다 행복할까?
이런 질문들에 꼬리를 물다보면, 결국 인간의 삶 속에서의 가치는 결핍에서 오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행복, 사랑, 슬픔, 노력, 성취와 같은 모든 인간의 희노애락과 삶의 소중한 의미들은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과 개인의 불완전함으로부터 생겨난다는 생각이다.
최근 본 넷플릭스 시리즈 아케인에서 빅토르는 인류가 하나의 지성체가 되어 불완전과 유한함을 극복하는 것이 완벽이며 종의 영광스러운 진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실현시킨 빅토르는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과거를 바로잡고자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완벽이 비극인 이유도 이전에 말한 결핍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괴롭게 하는 감정적 고통, 질병들 그리고 석기시대에 머물러 진화하지 못한 신체와 정신을 완벽히 초월하고 우주의 이치를 통달한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확실한 것은, 그들은 새로운 것을 탐구하지도, 감정을 느끼지도 않는, 그럴 필요조차 없는 아주 정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과 무엇이 다른걸까?
결국 인류가 추구하는 완벽은 죽음, 즉 무생물에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AI로부터 우리는 그런 죽음과 같은 종류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스스로를 챙기고 사소한 즐거움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라는 사실이
완벽으로부터 도망쳐 결핍으로부터 얻는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