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원문: 리로그에서 읽기

최근 우테코 선배들과 독서 토론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선정된 서적은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였고, AI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특이점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AI와 기술을 삶에 깊게 접목시키는 것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말하는데, 그것들이 묘하게 불쾌감을 준다.

과연 기술로 인간의 삶을 변형시키는 것이 옳을지에 대해 고민해 볼 만한 책이다.

아래는 발제 질문과 나의 생각을 적었다.

철학 단골 질문들이라, 독서 토론에서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여러분은 사후에 자신을 레플리컨트나 마인드 업로드의 형태로 남기고 싶으신가요?
(죽은 후에도 몸을 바꿔가며 기억을 이어갈 수 있다면, 더 살고 싶은가?)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22기 : 정면승부! 로봇아빠의 역습 라프텔 - 애니 추천 애니 스트리밍 서비스

나는 반대한다.

삶에 대한 소중함은 삶 자체로부터 나오는가?

삶에 대한 의미는 삶을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 감정들, 기억들 그 자체에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들이 의미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삶의 대부분의 의미가 죽음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것이 삶을 유한하게 만들며, 모든 가치는 그 유한함에서 나온다.

우선순위는 비로소 유한함을 느낄 때 보인다.

미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다.


지금 당장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여러 답이 있었다.

혼자 집에서 쉬고 싶은 사람도 있었고, 친구와 한적하게 놀고 싶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일 죽는다는 조건으로 당장 뭘 하고 싶냐고 질문을 바꾸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먼저 가족을 만나러 갈 것이라고 답했다.

즉, 끝이 있음을 기억할 때, 그리고 그것이 가까워질수록 막연하게 존재하던 인생의 가치와 우선순위가 뚜렷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끝이 막연히 희미해져 삶이라는 것이 영원에 가까워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우선순위를 잃을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것, 배우는 것, 느끼는 것 모두 가치를 잃을 것이다.

모든 것들이 ‘지금’이라는 시간의 일회성에 얽매이지 않기에 노력할 필요도, 기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영원한 삶 안에서 인간은 모든 지식과 진리, 모든 경험과 관계를 얻게 될 것이며,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잊을 것이다.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완벽에 가까운 상태. 그리고 그것이 보장된 삶.

그것은 죽음과 무엇이 다른가?

살아가면서 힘껏 끌어안으려 노력했던 소중한 것들이 바스라지는 죽음과 그 소중한 것들을 끌어안을 이유 자체가 희미해지는 영원한 삶은 내게 대척점이 아니라 그저 죽음의 서로 다른 두 갈래 길로 보인다.

인류는 어쩔 수 없이 본능에 얽매이게 된다.
뇌 프로그래밍을 통해 본능에서 벗어나고 궁극의 지능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나를 더 나은 나로 만드는가?

아케인 구원자 빅토르 | OP.GG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뇌를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통해 생존을 위해 생긴 어쩔 수 없는 습관들을 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예시로 이런 것들이 있을 것이다.

  • 건강에 망치는 단 음식에 끌리는 것 (과거 당은 자연에서 찾기 힘들었지만, 현대 당은 수많은 병들을 유발)
  • 장기적인 목표보다 당장의 작은 즐거움을 선택하는 것 (쇼츠, 릴스 중독도 이것으로부터 기인한다.)
  • 소속감을 위해 뒷담화를 즐기는 것 (과거에는 소속 자체가 생존과 밀접했다.)

누구나 이런 습관들을 버리고 싶어 할 것이다.

과거에는 생존을 도왔던 본능이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인간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높은 가치들로 향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본능들 중에서도 우리가 고귀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은 아주 깊게 얽혀있다.

사랑, 헌신, 우정, 책임감, 효, 소속감이 그렇다.

본능으로 생긴 어쩔 수 없는 습관들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곧, 가족과의 관계, 타인과의 유대감, 연인과의 사랑조차도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본능의 부산물이며, 자아실현을 위해 버려져야 하는 호르몬 작용이라는 말이 된다.

그것이 유쾌한가?

불쾌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것도 그저 본능과 교육으로 새겨진 막연한 죄책감이 아닌지도 의심해보았나?

그럼에도 사랑은 다른 것들과 달리 고귀하다면, 위에서 말한 예시와 사랑을 나눌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가 버리고 싶은 것은 본능 자체인가, 그 본능이 드러나는 특정한 방식인가?

이에 대한 개인의 의견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답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책이 추구하는 본능을 넘어서는 초월조차 생존을 위해 지식을 탐구하는 인간의 본능 위에 세워진 욕구일 뿐이며, 만약 초월에 닿더라도 이러한 의문은 또다시 생겨날 것이다.

전체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