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원문: 리로그에서 읽기

이방인 독서 토론에서 루드비코가 던진 말이다.
슬픔은 슬픈가?
슬픔은 그 자체로 슬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게는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주제였다.
우리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슬퍼하고, 가끔은 울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은 명백히 ‘슬픔’이지만, 슬퍼했던 시간 자체를 슬프게만 기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감정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안타까운 일이 있을 때,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슬픈 책을 읽었을 때, 소중한 인연과 멀어질 때 마음으로 느끼는 명백한 슬픔과 같은 감정이다.
두 번째는 기억을 맺는 감정이다.
첫 번째가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감정이라면, 두 번째는 머리에서 끝맺는 감정이다.
어떤 경험을 돌아보며 ‘기뻤다’, ‘슬펐다’ 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정의하기도 전에 이미 피어오르고 있기에 다루기가 어렵다.
하지만 기억을 맺는 감정은 내가 그 감정과 기억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슬퍼했던 순간, 힘들었던 시간까지도 값지게 여긴다면 좋은 기억으로 맺을 수 있다.
반대로 기쁘고 감사했던 순간조차 좋게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저 그런 시간으로 남는다.
지나온 시간들을 끝맺는 것이 온전히 내게 달려있다면, 나는 그 시간들을 가치 있고 즐거웠던 감정으로 맺고 싶다.
지금 나는 우테코에서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하루하루가 벅차다.
힘들다. 명백하게 힘들다. 마음 편히 쉬어 본 지 오래 됐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이 과정을 즐겨보고 싶다.
이 시간이 미래의 나를 더 빛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설령 기대했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동안의 노력과 성장을 가치 있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힘들었던 이 시간도 내게 의미 있는 과정으로 남을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이 의미 있기를 바란다.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