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스터디 자살 사건

원문: 리로그에서 읽기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 『눈사람 자살 사건』 (달아실, 2019)

1일 1글쓰기 스터디를 시작했다.

스터디를 하자는 약속만 했을 뿐, 언제부터 글을 쓸지는 정하지 않았다.

이미 밤 12시가 넘어버린 시간, 모아가 언제부터 글을 쓸거냐고 묻는 질문에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위의 시가 떠올랐다.

더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를 고민하면서 어느 쪽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오래 마음에 남았던 시다.

지금처럼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오늘이든, 내일이든, 백엔드 8기 이든이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렇게 상관없다고 넘겨버린 안일함들이 모여, 어느새 내 삶의 결정권을 잃었다는 무력감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고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삶도, 어쩌면 내가 계속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을 미뤄온 결과일지 모른다.

새벽에 이런 공상을 적어내는 것으로부터, 내 삶이 너무 빨리 녹아내리는 것을 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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