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t] 서로 다른 ‘안다’의 기준
나는 프로젝트에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에서는 팀원이 각각 역할을 정해 다른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내가 관여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팀원이 하는 말은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디까지 알고, 어디부터 모르는지를 항상 의심했다.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확신이 있을 때만 의견을 표출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문제점을 프로젝트 의사소통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48개의 테이블, 146개의 이슈
Knot의 초반 기획에는 노션의 에디터 기능이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팀원과 함께 노션의 데이터 구조를 공부하고 서비스에 적용하려고 했다.
노션은 페이지 안의 내용을 블록 단위로 다루는데, 그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웠다.
페이지와 블록뿐 아니라 글자의 서식과 참조, 데이터베이스와 속성까지 우리 서비스에 표현하려니 고려해야 할 것이 계속 늘어났다.
팀원은 프로젝트 초반부터 아주 구체적인 구조를 그렸고, 노션의 구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테이블이 생겨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프로젝트가 시작하자마자 48개의 테이블을 설계했고, 당시 저장소에 열린 이슈는 146개까지 늘어났다.
아직 프로젝트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규모의 구조는 기이할 정도로 컸다.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으로만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감이라,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테이블이 왜 이렇게 많아서는 안 되는지, 어떤 문제가 생길지, 대신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말할 수 없었다.
근거 없이 반대하면 열심히 준비한 사람의 일을 기분만으로 막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 나는 팀원의 방향에 동의했다.
내가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섣불리 의견을 내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내가 말을 아꼈다는 사실이, 우리가 더 나은 판단을 했다는 뜻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해소되지 않은 악감정
잘못된 판단과 별개로 무섭게 쌓여 갔던 것은 프로젝트에 대한 악감정이었다.
선택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좋지 않은 방향으로 커져 갔으며, 잘못된 점들을 찾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완벽한 근거로 팀원을 설득할 자신은 없었다.
앞서 언급한 팀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고 느꼈다.
지금 돌아보았을 때, 팀원의 입장에서 나는 겉으로는 동의하면서 정작 무엇을 고민하는지 공유하지 않은 사람처럼 비쳤을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신뢰를 위해 말을 아꼈지만,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 것은 결국 방관과 다를 바가 없었다.
코치로부터 얻은 답
이후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며, 설계와 기술은 사용자의 문제에서부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코치의 조언에서 이전의 위화감에 대한 답을 얻었다.
왜 지금 이 테이블이 필요한지, 왜 이번 스프린트에 이 일까지 해야 하는지, 이것이 어떤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지 전혀 답하지 못했다.
그 후, 내가 느낀 것은 진작 많은 대화를 시도했다면 어렵지 않게 도출해 낼 수 있던 결론이라는 생각이었다.
부족한 생각이더라도 내가 느끼는 바를 충분히 표현하고 상대와 의견과 지식을 조율했다면 답을 찾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의견을 내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갖추려고 했다.
문제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했고, 그로 인해 생길 일도 알아야 했으며, 대신 선택할 설계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다’는 것의 기준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사람마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안다고 말하며, 누군가는 간단한 흐름 이해만으로 안다고 말한다.
이런 불일치는 아이디어가 오가는 프로젝트에서 충돌과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프로젝트 설계 단계에서 나는 전혀 모르고, 팀원은 많은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지만,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당시 나와 팀원의 이해도는 비슷하거나,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더 높았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의 정도를 파악하지 않은 채 확신의 정도로 수준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다짐
완벽하게 알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의문은 논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는 논의할 때 내가 어디까지 알고, 어디부터 모르는지를 분명하게 말하려 한다.
아직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의문이 생겼다는 사실까지 숨기지는 않으려 한다.